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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팀장이 되면서 겪게된 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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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원을 모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 첫 한달  개발팀장을 맡다 2021년 5월 , 기존에 있던 CTO분이 휴직(개인사)을 하게 되면서    개발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내게 일임하였다.   개발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전부 내게 맡긴 것으로 ,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의사결정권한을 갖게 된 것은 그만큼 내게 큰 신뢰가 있었음을   알수 있게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만큼 처음에는 삐걱거렸다. 가장 첫번째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업무의 배분이었다.   관리자가 되니까 해야할일은 업무를 만들고 또 그것을 팀원들에게 분배하고 잘 되고있는지 취합하고 관리감독을 하는것이었다.   군 시절 장교로 복무하면서 겪어봤던 일이긴 했지만, 군복무 당시에도 그닥 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쨌든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고, 어떻게 구현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경험이 쌓여있었기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실무자로 일을 할 때에도 항상 업무를 받아서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돌이켜보건대, 나는 주어진 업무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서 제안하고 기획하여 업무를 진행했다.  조그마한 스타트업이었던 첫 회사에서부터  내가 할일은 내가 만들어서 곧 잘했다. 어떤 큰 방향만 정해져있다면 그건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나에게 일은 항상 있었다.   매니저가되면서 달라진게...

인간이 환경보호를 해야할 행동근거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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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나는 환경을 전공했지만 환경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환경이 정말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입학해버린 상태였고, 진로에 대해서도 막연한 상태였다. 여타 다른 한국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점수에 맞춰 대학지원을 했고 그렇게 환경생태공학사라는 타이틀을 달게되었다. 국영수탐구로 이루어진 전형적 입시만을 위한 공부로 인해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무엇을 공부하고싶은지 깊은 고민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학생활은 개판 오분전이었다. 좁은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에서 고려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은 (내심 아닌척했지만) 아주 악질적인 자부심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위한 부모님의 용돈지원과 대학 4년 8학기동안 계속되었던 지급되었던 전액장학금은 나에게 어떤 절박감을 심어주지 못하였고, 그저 술과 사랑만을 쫓는 놀자대학생이 되게해주었다. 고대생이니까 어떻게든 취직은 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4학년이 되자 막연한 기대는 확실한 불안감으로 되돌아 왔다. 그렇게 불안감을 가지고 장교로 입대를 하게되었다. 무지와 무능력에서 오는 주위의 무시는 나를 굉장히 위축시켰다. 그럼에도 다행으로 여기는건 그런 위축감을 극복하고자 책을 참 열심히 읽었다. 신기하게도 책 구입 목록에는 꼭 환경관련 주제의 책이 있었는데, 나의 4년을 부정하고싶지 않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나는 억지로라도 환경과 관련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미숙한 철학과 행동에서 환경이라는 주제는 몸에 맞지않은 옷이었다.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지 어떻게 되든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될 것이라 생각을 했고, 남들도 그렇게 행동한다고 굳게 믿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악질적인 자부심또한 이 생각에 불을 지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놀자대학생이었지만 어느정도 학점을 챙기면서 공부하다보니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 개념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