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팀장이 되면서 겪게된 점들 1

이미지
                                                         <팀원을 모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 첫 한달  개발팀장을 맡다 2021년 5월 , 기존에 있던 CTO분이 휴직(개인사)을 하게 되면서    개발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내게 일임하였다.   개발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전부 내게 맡긴 것으로 ,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의사결정권한을 갖게 된 것은 그만큼 내게 큰 신뢰가 있었음을   알수 있게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만큼 처음에는 삐걱거렸다. 가장 첫번째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업무의 배분이었다.   관리자가 되니까 해야할일은 업무를 만들고 또 그것을 팀원들에게 분배하고 잘 되고있는지 취합하고 관리감독을 하는것이었다.   군 시절 장교로 복무하면서 겪어봤던 일이긴 했지만, 군복무 당시에도 그닥 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쨌든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고, 어떻게 구현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경험이 쌓여있었기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실무자로 일을 할 때에도 항상 업무를 받아서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돌이켜보건대, 나는 주어진 업무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서 제안하고 기획하여 업무를 진행했다.  조그마한 스타트업이었던 첫 회사에서부터  내가 할일은 내가 만들어서 곧 잘했다. 어떤 큰 방향만 정해져있다면 그건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나에게 일은 항상 있었다.   매니저가되면서 달라진게있다면 내가 할일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남이 할 일도 만들어줘야했다.  다행히 팀원들에 대한 면담을 실시한 결과,(팀원을 맡게되자마자 했던 부분)   마이크로 매니징을 원하지는 않았기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는 정도만 준비하면 됐었다.   문제는 내 실무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팀원들의 업무 방향도 설정해야했기때문에 시간이 배로 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두배로 일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내 실무시간을 줄였고

인간이 환경보호를 해야할 행동근거에 관한 고찰



서론

나는 환경을 전공했지만 환경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환경이 정말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입학해버린 상태였고, 진로에 대해서도 막연한 상태였다. 여타 다른 한국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점수에 맞춰 대학지원을 했고 그렇게 환경생태공학사라는 타이틀을 달게되었다.

국영수탐구로 이루어진 전형적 입시만을 위한 공부로 인해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무엇을 공부하고싶은지 깊은 고민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학생활은 개판 오분전이었다. 좁은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에서 고려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은 (내심 아닌척했지만) 아주 악질적인 자부심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을 위한 부모님의 용돈지원과 대학 4년 8학기동안 계속되었던 지급되었던 전액장학금은 나에게 어떤 절박감을 심어주지 못하였고, 그저 술과 사랑만을 쫓는 놀자대학생이 되게해주었다. 고대생이니까 어떻게든 취직은 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4학년이 되자 막연한 기대는 확실한 불안감으로 되돌아 왔다. 그렇게 불안감을 가지고 장교로 입대를 하게되었다. 무지와 무능력에서 오는 주위의 무시는 나를 굉장히 위축시켰다. 그럼에도 다행으로 여기는건 그런 위축감을 극복하고자 책을 참 열심히 읽었다. 신기하게도 책 구입 목록에는 꼭 환경관련 주제의 책이 있었는데, 나의 4년을 부정하고싶지 않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나는 억지로라도 환경과 관련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미숙한 철학과 행동에서 환경이라는 주제는 몸에 맞지않은 옷이었다.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지 어떻게 되든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될 것이라 생각을 했고, 남들도 그렇게 행동한다고 굳게 믿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악질적인 자부심또한 이 생각에 불을 지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놀자대학생이었지만 어느정도 학점을 챙기면서 공부하다보니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 개념은 내가 환경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공유지(영어: Common Pool Resource)의 비극은 '지하자원초원공기호수에 있는 고기와 같이 공동체의 모두가 사용해야 할 자원은 사적이익을 주장하는 시장의 기능에 맡겨 두면 이를 당세대에서 남용하여 자원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키백과)

언제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그 본성이 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생때 생물과목을 좋아했는데 인간 역시 생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에  환경이라는 주제를 버리지 못하는 내 행동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행동근거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 괴리감은 평생을 쫓아 다닐 것이 분명했다. 그 근거를 정리할 필요성이 생겼으니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였다. 인간 본성은 악한가 선한가라는 의문점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했다. 환경을 전공한 덕에 깊은 철학적 고민을 하게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짧은 공부 끝에 기록을 남기려 한다. 인간 본성은 선,악 중 과연 어떤 것이고, 그 본성을 바탕으로 내가 환경에 대해 가져야할 태도는 무엇인지 기술할 것이다.

kbs에서 방영했던 '경이로운 지구'라는 다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맹자,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2016년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촛불시위등을 접하고 나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결론은 짧은 식견에 의한 것이기에,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먼저 나는 현재 유물론적인 관점을 지녔고, 진화생물학에 대해 짤막하게 알고 있고,무신론자라는 점을 밝히고 글을 쓴다.

본론

1. 인간의 발생과정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생물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1-1 생명의 기원과 남조류의 발생

막 생겨난 지구는 소행성들과의 수많은 충돌로 현재의 크기로 성장하였다.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태양과의 거리는 앞으로 생겨날 생물들이 살기에 매우 적절했다. 지구는 시간이 지나 무기물로 가득찬 바다로 뒤덮여져 갔다. 지금부터 설명되어지는 생명의 기원은 추측에 근거 할 수 밖에 없다. 그 기원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때문에 내가 비록 무신론자이지만 신이 관여했다고 해도 반박할 여지가 없다. 물론 과학이 모든 진리의 상위진리가 될수 없고, 완벽한 이론이 아님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무기물들은 '우연'하게 유기물로 결합되어지곤 했다. 다양한 유기물이 발생했는데 아주 아주 특이하게 자기복제를 할수 있는 물질이 발생했다. 어떻게 발생했을까? 이 아주 미세한 자기복제자는 분자단위로 자신과 친화성이 있는 물질들을 끌어들이는 화학적 특성이 있었다. 화학적으로 끌어들여 하나의 결합체가 되었을때 안정성이 생긴다면 가능할 법도 하다. 자기복제자는 한번만 발생해도 그 수를 수없이 늘릴수 있었다. 어떤 우연한 기회에 친화성이 약한 부분이 끊어지면서 둘로 쪼개졌다면, 그 쪼개진 분자들은 주위의 물질로부터 또다른 짝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자기복제자는 자신과 닮은 물질들을 마구 찍어냈다. 그러나 복제의 과정에서 간간히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복제 과정의 오류가 생기고 그것이 확대되면서 모두 똑같은 복제자 사본의 개체군이 아닌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몇가지 변종 복제자의 개체군으로 채워졌다. 어떤 변종은 다른 변종보다 그 수가 많기도 했을 것인데, 그 이유는 어떤 변종이 다른 종류보다 원래부터 안정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어떤 분자들은 일단 만들어지면 다른 것보다 덜 분해되었을 수도 있기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수명이 길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의 사본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있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명이 긴 자기 복제자는 점점 더 그 수가 많아졌을 것이다. 다른조건이 같다고 할때 분자의 개체군에는 수명이 길어지는 '진화적 경향'이 나타났을 것이다[1]_이기적유전자_복제의오류.61p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기복제자들은 그 수와 몸집을 불리었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자원의 한계때문에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복제에 별로 유리하지 않은 종류는 경쟁으로 인해 그 수가 줄다가 결국 절멸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몇몇 종류의 생물들은 처음에는 메탄 위주의 대기상태, 물에서만 살았던 생물들로 진화했다. 1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는 '원핵생물' 들이다.
첫번째 위협이 찾아왔다. 운석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규모가 큰 운석충돌은 모든 지구의 바다를 증발 시켰고, 지구를 다시 용암과 바위의 행성으로 만들었다. 생물은 절멸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지하 깊숙히 살고 있던 생물들이 있었다. 지하위치는 지상의 열기와 내핵으로부터 오는 열기가 생존에 위협을 주지않을 정도의 위치였다. 아주 긴시간이 흘러 지구의 온도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 비가내리고 바다가 다시 생겨났다. 미생물들은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 몇몇은 남조류로 진화를 하였다. 남조류는 스스로 에너지를 합성하기 시작했다. 그 부산물로 나온것이 바로 산소와 물이었다. 따뜻한 기후와 충분한 유기물은 남조류를 번성시켰다. 산소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때의 지구 대기의 산소 비율은 1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1-2 첫번째 지구동결 현상과 진핵생물, 다세포생물의 진화

산소가 많이 발생하면서 하늘 위로 올라갔다. 이때의 지구 대기는 메탄을 많이 함유하고 있었는데, 메탄은 산소와 맹렬하게 반응했다. 메탄은 대표적 온난화 물질중 하나였다. 그런 메탄이 신나게 타들어가는 과정에서 지구의 온도는 뚝뚝 떨어진다. 지구 동결현상이 도래하였다. 지구가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바닷속까지 얼어붙었다. 생물이 살수 있었을까? 지열로 인해 얼지 않는 온천같은 곳에서 그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다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온도가 오를 수 있던 이유는 지구 대류현상으로 인해 맨틀쪽에 깔려있던 이산화탄소층이 펑펑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결현상 직전보다는 따뜻하지 않았지만 생물이 다시 살기에 적정온도로 올라갔다. 온도가 올라가니 대기현상도 활발해져 거대한 허리케인이 발생하곤 했다. 허리케인은 심해쪽에 있던 다양한 영양소들을 바다표면으로 올려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다양한 영양소와 대기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이산화탄소들은 광합성 생물들에게 천국을 열어주었다. 대량의 광합성 작용은 산소를 대량으로 방출하도록 했다. 산소가 증가하니 산소로 호흡하는 생물들도 늘어났고, 무엇보다 진핵생물이 크게 발생했다. 넘쳐나는 산소는 진핵생물에게 비만을 유래하였다. 넘쳐나는 물질을 주체못하고 진핵생물들은 콜라겐이라는 물질을 분비해서 다세포 생물로 뭉칠수 있었다.


1-3 생물의 육지 개척과 공룡시대

다세포생물은 지금으로부터 6억년전에 발생했다고 한다. 단순한 세포에서 다세포 생물이 되자 좀더 생존하고 번식하기 여유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 척추동물로 진화가 일어났다. 이때는 지상에 올라가기 전인 물고기 시대였다. 바다를 제외한 곳은 아직 사막과 바위산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일부 녹색식물이 강가부터 점령하기 시작했다. 식물이 죽어 강가주변에 쌓이기 시작하자, 육식동물에게 쫓기던 초식동물들은 강가로 밀려났고, 죽은 식물 속에 숨어 살았다. 육식동물의 눈치를 보며 배를 바닥에 깔고 지내다보니 배가 납작히 눌리기 시작했고, 양서류가 발달하였다. 육상으로 올라온 양서류들은 두갈래로 갈라졌다. 단궁류와 용궁류인데, 단궁류는 포유류이고 용궁류는 파충류로 각각 진화를 한다. 처음에는 파충류인 공룡이 우세하였다. 지구 내부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40조톤이나 뿜어져나왔고, 이는 온난화 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온난화 현상은 산소농도를 낮추었다. 낮아진 산소농도에 파충류와 포유류는 호흡방법을 진화시켰는데 파충류는 기낭을 통해, 포유류는 횡격막을 통해 산소효율을 높였다. 기낭호흡이 더 유리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충류가 포유류보다 더 번성했었다. 그 후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공룡은 절멸한다.


1-4 포유류의 번성과 남극의 형성

공룡들이 사라지자 포유류의 번성시대가 찾아왔고, 식물쪽에서도 활엽수가 크게 번성하였다. 활엽수가 발달하면서 천적으로부터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 나무위에 살던 포유류가 있었다. 나무위에 달린 열매를 주식으로 하던 이 포유류는 나뭇가지를 잡고다니고, 열매를 획득하기위해 손이 발달하였다. 원숭이였다. 일부 원숭이들은 눈이 잘 발달되었다. 나뭇가지를 잘 잡기위해서는 원근감을 구별할 수 있어야 했고, 잘익은 열매들은 붉은색을 띄기 마련이었기에 적색시를 갖추게 되었다. 그 와중에 지구의 남쪽 극지방에 큰 얼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극은 지구의 온도를 크게 낮추었고, 활엽수들은 높은 온도에 적응한 식물들이었으므로 낮아진 기후에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원숭이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고 나무가 없는 초원의삶에 적응해야 했다.


1-5 인간의 출현

초원에 내던져진 원숭이들은 자신들의 주식을 잃어버렸다. 초원의 다양한 포식자들에게 대항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원숭이들은 육식을 하기도 했는데, 주로 포식자들이 먹다 남긴 고기들이었다. 이 원숭이들은 생존하기위해 이빨과 발톱이 아닌 다른 부위를 발달 시키기 시작했다. 바로 뇌였다. 미약하디 미약한 원숭이들은 포식자들이 언제 어디서 고기를 먹고 남기고, 어디에서 올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뇌는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기에 안성맞춤인 기관이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예측은 뇌 용량을 크게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생존을 하기위해 무리생활을 하였고, 또다른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눈의 흰자위와 감정이었다. 다른 생물들은 싸움이 일어났을때 자신이 공격하고자하는 곳을 노출시키지 않기위해 눈의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은색이다. 그러나 이 원숭이들은 자신의 편을 확인하고자 흰자위를 발달시켰다. 누가 누구를 명확히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감정표현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 무리는 더 커질 수 있었다. 감정의 표현은 뇌 성장의 가속화를 도왔다. 뇌성장을 도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리생활을 하다보니 이제는 포식자가 남긴 고기가 아니라 직접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냥을 위해서 원숭이 개체가 협력이 필요했고 그에따라 언어가 발생하였다. 사냥 계획과 언어 역시 뇌용량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원숭이가 훗날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하고 성공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다.




2. 사회적 동물로서의 도덕윤리 형성

1문단에서는 인류가 생물로부터 기인하였고, 전적으로 어떤 기작으로 발생하였는지를 서술하였다. 여기서 가져가야할 논지는 생물은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수차례 도망쳤고, 그로부터 살아남았다라는 점, 그 중에서도 인간 종은 위협으로부터의 탈출 수단으로 뇌를 발달시켰다는 점이다.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사회성을 발달시켜 군집을 이룰 수 있었던 인간들은 사회적 동물로 발달해 갔다. 그러면서 사회로부터 격리되면 생존에 큰 위협을 느낄 수 있도록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의 부산물의 하나로 부끄러움의 감정을 갖게된다. 부끄러움은 군집속에서 인간 개체가 도태되지 않도록 도와준 대표적인 감정이다. 구약에 나오는 선악과는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기본적인 인간사회의 도덕윤리를 만들어 내는데 시발점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인간 군집의 구성원들은 모여살되 각자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의 어떤 도덕률을 발달 시켰을 것이다. 그 도덕률은 군집 위치에 따라, 구성원 수에 따라 달랐다. 도덕률의 발달에는 인간의 양원적 정신 상태도 일조한것으로 보인다. 양원적 정신이란 인간의 언어가 크게 발달하기 전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이때의 뇌는 어떤 불안으로부터의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우뇌가 처리하게했다. 이 처리된 데이터는 교량을 통해 좌뇌로 흘러가고, 데이터를 받은 좌뇌는 언어가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청각중추가 해석하게 했다. 이 해석은 인간에게 '신의 목소리' 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불안의 스트레스에 기초한 신의목소리는 인간이 생존하는 방향으로의 계시를 만들어 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수렵채집활동을 했지만 뇌용량의 비약적인 증가로 인해 자연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쳤다.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있자니 식물의 씨앗으로부터 그 식물이 다시 발생하는것을 알게되었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보다 정착을 해서 농경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정착생활은 인간의 사회적 능력을 더욱 발달 시켰다. 농업 혁명의 시작이었다. 정착 생활은 잉여생산물을 만들어 내었고, 잉여생산물은 인간 사회의 계급과 침략전쟁을 부추겼다. 계급의 발생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생겨났고, 지배층들은 피지배층을 지배할 어느 장치가 필요했다.  전쟁으로 인해 인간들은 내부로의 결속을 더욱 견고히 다져갔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법을 제정하였다. 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지금껏 진화하면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사회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체가 군집으로부터 격리 되지 않도록 해주는 도덕률(혹은 신의 목소리)을 성문화시킨 것이다.

3.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앞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내용을 통해 큰 주제중 하나였던 환경에 대한 자세의 근거가 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인간이 발달시켜온 도덕윤리, 법, 종교같은 것들은 현시대에서도 선과 악의 기준점이 된다. 선악의 문제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이기도 하다. 밀의 공리주의에서는 선악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선은 생존,쾌락(행복)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의 악은 죽음이나 고통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생물은 그 발생부터 현재까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고통을 통해 도망치고자 했고, 생존의 안전을 느끼면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하였다. 인간들 역시 생물이기때문에 그들이 규정짓는 선과 악은 생존이나 행복감과 관련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선과 악의 몇가지 예를 살펴본다. 선으로 생각할수 있는 것들로 사랑, 우정, 나눔, 이타적, 보호 등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전쟁, 사기, 비난, 강도, 배신등이 떠오른다. 종종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방법으로 이타적인 행동이나 나눔같은 것들이 아닌 배신과 강도같은 것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강도나 배신을 통해 내 생존의 안위를 얻었을 수도 있는데, 이것들을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인간이 출현하면서 만들어낸 선의 개념에는 단순히 한 개체만 생존하고 다른 개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긴시간 동안 세대에 세대를 거치며 인간이 뇌에 새겨둔 것이기 때문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주 긴시간을 거쳐 인간 군집에서 '좋은'인간들이 '나쁜' 인간보다 생존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해서이다. 맹자의 예를 인용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맹자가 말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다면, 깜짝 놀라 구하러 달려나가지 않겠는가, 왜 그러는 것인가, 아이를 구해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함이겠는가, 마을 사람으로부터 칭찬받기 위해서이겠는가, 어린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기싫어서겠는가. 단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절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저러한 상황에 놓였다면 나 역시 어떤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이 튀어 나갈 것이다. 혹여 내가 우물쭈물 망설이고, 아이를 구하지 못했더라도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고통을 받을 것이다.
대부분 부모로부터 교육을 잘받고 사랑속에 커온 인간이라면 응당 그럴것이다. 혹은 그런 상황에 있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제도가 갖춰져 있기때문에 현대인들 대부분은 선악의 개념을 가지고 자라고 선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자 한다. 일부 예외적으로 교육이 모자라거나 정신병변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그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유전자 풀에서 흔히 보여지는 예외일 뿐이다. 이러한 밈이 사라지지 않는한 현대 인류사회는 선을 행함으로써 행복을 느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유전자는 분명 이기적이다. 생존기계로서 유전자를 운반하는 개체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개체들이 군집을 이루고 경쟁을 할때 어떤 것이 생존에 유리한지를 리처드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무조건적인 선을 베푸는 유전자와 배신하도록 하는 유전자 두개만 있다고 했을때, 무조건적인 선을 베푸도록 하는 유전자는 배신하도록하는 유전자에게 착취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조건 적인 선을 베푸는 유전자가 절멸하고나면 배신하도록 하는 유전자 끼리는 서로를 착취하려고 들기때문에 앞선 유전자를 따라 절멸하기 쉽다. 색다른 종류의 유전자를 추가해보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쓰는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자신에게 잘해주면 화답하고, 배신을 하면 따라서 배신을 하는 유전자다. 처음에는 배신만 하는 유전자에게 당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배신하는 유전자는 도태 될 것이다. 무조건적인 선을 베푸는 유전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쓰는 유전자덕에 배신만 하는 유전자에게 당하더라도 어느정도 유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배신만 하는 유전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쓰는 유전자 덕에 수가 감소하긴 하겠지만 무조건적인 선을 베푸는 유전자를 이용하여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가정에는 전제조건으로 협력을 통한 이익이 착취를 통한 이익보다 무조건 크다는 것이 있다. 자연계에서 생물간 일어나는 게임은 영합적인 게임보다는 비영합적인 게임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으므로 위 가정은 어느정도 성립한다고 본다.

더불어 인간 역사를 보고 있으면 이타적이고, 다같이 잘 살고자하는 방향(선)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초 농경사회가 발달하면서 계급제가 생겨나기는 했으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모두에게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에 최순실 사태를 통해 나는 이런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일부 인간이 악을 통해 잠깐 유리한 이익을 얻었지만 결국에는 모두에게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촛불 집회에 가보았을때, 심리적으로 울컥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느껴졌다. 인간의 선악에 대해 이렇게 탐구하기전에는 사회로부터 지탄 받을 짓과 생각을 하곤 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이유가 결국은 나에게 닥칠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행복(쾌락)을 느끼기 위함이라는 말인가?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인간의 선은 결국 본인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이기적 행동의 결과물이다. 자칫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라 비판받을 수는 있겠으나, 나는 이런식의 설명이 아니면 인간의 이타적 행동과 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 역시도 기본적으로 그런 선의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종교가 있었다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인간의 본성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은 선으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4. 환경에 대해 인간이 가져야할 태도.

환경에 대한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인식은 어떠한가? 환경 보호, 환경 보존은 선으로서 생각되어지고,
환경 파괴, 환경 오염은 악으로서 생각되어진다. 위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생존으로부터 발생된 선악에 대한 인간 본성과 연관짓는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설명이 된다.
우리 인간은 선으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환경에 대한 보호를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내 자신이 환경을 전공하면서 인간 행동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했던 한가지 이유인 공유지의 비극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인간의 무지로부터 발생했다고 설명이 된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이 발생했을 때는 1968년 산업화가 한창인 시절이다. 이때는 인간이 환경 파괴로 인해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으리라곤 알지 못할때이다. 물을 사먹고, 스모그가 발생할 것이라고 그 시대 인간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결국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서야 선으로서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도덕윤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언제든지 새로 추가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

이로써 나는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행동근거를 충분히 알아냈다. 신을 믿지 않기때문에, 죽음을 내 삶에 가까이 한다면 나는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사랑할 것이고, 범 인류적인 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마음씨 좋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정농단을 일삼는 자들과 국제 테러범들에게 알려주고싶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iframe 보안 문제 우회 및 해결법 1

iframe 보안 문제 우회 및 해결법 2

개발팀장이 되면서 겪게된 점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