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팀장이 되면서 겪게된 점들 1

이미지
                                                         <팀원을 모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 첫 한달  개발팀장을 맡다 2021년 5월 , 기존에 있던 CTO분이 휴직(개인사)을 하게 되면서    개발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내게 일임하였다.   개발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전부 내게 맡긴 것으로 ,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의사결정권한을 갖게 된 것은 그만큼 내게 큰 신뢰가 있었음을   알수 있게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만큼 처음에는 삐걱거렸다. 가장 첫번째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업무의 배분이었다.   관리자가 되니까 해야할일은 업무를 만들고 또 그것을 팀원들에게 분배하고 잘 되고있는지 취합하고 관리감독을 하는것이었다.   군 시절 장교로 복무하면서 겪어봤던 일이긴 했지만, 군복무 당시에도 그닥 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쨌든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고, 어떻게 구현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경험이 쌓여있었기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실무자로 일을 할 때에도 항상 업무를 받아서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돌이켜보건대, 나는 주어진 업무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서 제안하고 기획하여 업무를 진행했다.  조그마한 스타트업이었던 첫 회사에서부터  내가 할일은 내가 만들어서 곧 잘했다. 어떤 큰 방향만 정해져있다면 그건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나에게 일은 항상 있었다.   매니저가되면서 달라진게있다면 내가 할일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남이 할 일도 만들어줘야했다.  다행히 팀원들에 대한 면담을 실시한 결과,(팀원을 맡게되자마자 했던 부분)   마이크로 매니징을 원하지는 않았기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는 정도만 준비하면 됐었다.   문제는 내 실무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팀원들의 업무 방향도 설정해야했기때문에 시간이 배로 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두배로 일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내 실무시간을 줄였고

인지부조화



주제 : 인지부조화

목적: 인지부조화를 파악하고 극복하는 방법.



인지부조화라는 단어가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내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것인데, 구글에 검색하면 다음 내용이 나온다.
-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등을 말한다
-
이번 포스트에서는 내가 겪은 인지부조화 경험과 현 시점 대한민국의 광화문을 바라보면서 느낀점을 서술하고자 한다. 

경험 1
 얼마전 한국남자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보았다. 솔직히 너무 불편했다. 말하는 단어하나하나가 가시가 돋혀있으며, 뭇 한국남성들을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분히 공격적인 글들이었다. 말을 하더라도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하나? 싶었다.
불편함을 꾹꾹 눌러가며 읽어 내려갔다. 미간을 꿈틀거리며 반박할 내용을 찾아내려 했지만, 내 부족한 머리로는 논리적 약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전부 맞는 말이었다. 한번 더 읽어 내려갔다. 조금은 다르게 읽혔다. 편안해졌다고 해야할까.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했다. 분명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성별에서 상대적 기득권을 가진 남자였기 때문이다. 상대적 약자의 입장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나와 영어권 백인을 비교했고, 나와 기성세대의 어른들, 나보다 잘사는 부자들과 비교하며 읽었다. 글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머릿속에 아주 조금 들어오지 않았나 판단한다.
그 불편했던 글들은 합리적이었고, 근본적 원인에 대한 명확한 지적을 하고 있었다.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끄덕일만한 내용과 주제였다. 내가 꽉 막혀 있었다. 


경험2
 19대 대선주자 안희정과 이재명.
 나는 충남도지사 안희정을 지지한다.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1월즈음, 최순실 사태 영상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관련 영상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이 평소 내가 생각하던 바와 방향이 비슷했기에 애정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대선주자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종종 들려왔지만, 대수롭게 생각않고 있었다. 새해가 되어 본격적으로 안희정은 대선출마선언을 하였고, 그가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은 희망적으로 마음속에 들어왔다. 대연정과 선의발언같은 큰 이슈가 있음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안희정이 진정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화나 연단에서 말을 제대로하지 못하고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실망감이 크지만.
 안희정과 달리 이재명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도때문에 그랬다. 공격적인 발언과 행동이 그러했고, 특히 자신이 옳고 정의다라며 나서는 모습이 불만이었다. 그의 극성적 지지자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사모와 비교했을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모습이 빼다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해왔으니 이제는 다 때려부숴야 한단다. 몽고메리 버스안타기 운동을, 대한민국의 3.1운동을 한번쯤은 고려했으면 한다.
 하지만 대선주자의 태도와 같은 것만으로 대통령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이재명의 정책을 알아보았다. 특히 복지정책 관련,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을 처음에 아이러니하게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난 후에는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태도적인 측면에서도 생각보다 공격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일관된 모습이 신뢰감을 느끼게 해줄 정도였다.
 안희정에게 먼저 애정을 준 것과 이재명의 태도로 인한 선입견은 인지부조화로 이어졌다. 이재명의 비전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으로 살짝 삐딱한 시선으로 보았음을 인정한다. 인지부조화에 걸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광화문
  2017년 3월 1일,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 촛불집회는 2번 참여했었지만, 태극기 집회는 처음이었다. 놀라웠던건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사람도 많더라는 것이다. 뉴스로 보긴했지만 직접보니 그 크기는 촛불집회에 조금 못미치는 정도였다. 크게 다른점이 있다면 촛불집회의 연령대는 다양한 방면에 태극기 집회의 대다수는 5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한 90%정도, 간간히 젊은 부부와 아이들, 학생들도 보였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잠깐 동안 있으면서 느꼈던 점은 신기함이었다. 그들만의 기준으로 선악을 나누고 있었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일까? 서로 잘못되었다며, 알지 못하고, 속고 있다고 외쳤다.

노란리본의 의심은 합리적이고, 태극기의 의심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직접 집회에 와보니 그럴만도 하다고 느껴졌다. 예비역 중령이 올라와서 극강의 무기 '애무 십육'으로 다 쏴죽여버린다고 하는 발언에 태극기를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 공산당을 몰아내고 빨갱이를 처단하자는 구호를 신나게 외치는 아재들을 봤기때문이다. 정말 집회 대다수가 그런 발언에 공조하고 있었다.
서두에서 밝혔던 인지부조화의 정의(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를 다시본다면 광화문이 인지부조화에 걸린 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결론

이 사회는 인지부조화로 가득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본인만의 선과악을 규정짓는다. 플라톤과 기독교중심의 서구사회 영향을 받아 이상세계와 현실세계로 구분지어 선악을 나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또하나의 생존활동일지 모른다. 내 생존을 위한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떤 이상세계가 맞는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알수가 없다. 과학부터 종교까지 모든 것은 확률에 근거 한다. 언제나 귀납적인 추리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내일 당장 세계가 종말 할 수도 있다. 그 확률이 적을 뿐이므로 신경쓰지 않는 것 뿐이다. 인지부조화를 인정하고 내면으로 감싸기로 했다.

인지부조화는 불편하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감수 했을 때,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나의 행복의 근거는 성장에서부터 나온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나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나만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방법 -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가치를 담고 있는지 고민해본다.
내가 어리석다면 성장가치를 알아차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스스로 깨우치기 전에는 어떠한 조언을 들어도 확신할 수 없다.
성장가치가 없다면 깔끔히 무시한다.
성장가치가 있다면 한발 물러서 되씹어본다.
성장의 기준은 생각의 발견이다. '어? 이런생각도 있었네. ' 라고 생각이 든다면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듯이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그 대륙의 꽃과 나무, 동물들을 찬찬히 살피며 들어간다. 대륙을 품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예상범위 안에 있다면 굳이 들을 가치가 없다. 예상안의 범위이지만 내가 대처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처를 못했다는 것은 준비 여부와 상관없이 나의 무지라고 판단한다. 나의 무지는 즉 생각의 발견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성장의 기준에서 봤을때,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보다 좋은 가치를 탐구하기 위해 현실세계와 인간을 탐구한다. 인간은 너무나도 다양하기에 보편적 윤리관을 가지고 판단하면 감정소모가 일어난다. 아주 흰 도화지를 하나 준비한다. 이 빈 도화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붙여놓고, 물드는 색을 보고 판단한다. 내가 가진 색과는 전혀 다른 보색이 나올 수도 있다.

인간의 집단은 하나의 대상인간으로 판단한다. 통계치를 뽑아 단순화해서 판단한다.

인간을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자. 인간은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에, 항상 발견할 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무시할 것은 깔끔히 무시하자. 같은 점에 대해 미리 생각해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 생각에 대해 반하는 것은 내가 미리 준비를 했다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내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 점에 대해서 억지로 설파하려 들지 말자.
인간은 그 스스로가 하나의 우주이고 진리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억지주입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저 보여준다. 발견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훌륭한 전도는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관점이 매우 이롭고 성공적이라는 것을 붙잡아 말로하지 않고, 그저 허공을 향해 떠드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그사람의 선택이다. 내 생각과 가치관은 보편적이지 않다. 일시적으로 보편적으로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내 가치관에 동의를 해줄때이며, 그 역시 언제든 깨질 수 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iframe 보안 문제 우회 및 해결법 1

iframe 보안 문제 우회 및 해결법 2

개발팀장이 되면서 겪게된 점들 1